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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11권
文宗恭順大王實錄卷之十一
문종공순대왕실록권지십일
제작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선
제작 시기
단종 2년(1454년) 4월 ~
세조 1년(1455년) 11월
형태
문헌 (역사서)
현재 상태
소실됨
목차
1. 개요2. 상세3. 기타


1. 개요 [편집]

문종 1년(1451년) 12월 ~ 문종 2년(1452년) 1월의 기록을 담은 실록이며, 단종 2년(1454년) 4월부터 세조 1년(1455년) 11월까지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2. 상세 [편집]

춘추관 실록청에서 문종실록을 편찬하여 교정 작업 후 각 사고[1]에 보내기 전 교서관에서 표지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중 2권에서 11권 표지를 9권에, 9권 표지를 11권에 서로 바꿔 붙여버리는 실수가 있었고, 9권에 11권 표지를 붙인 이 문제의 실록은 전주 사고로 보내지게 되고 11권에 9권 표지를 붙인 실록은 다른 사고로 보내지게 된다.

이후에도 완전한 소실은 면했으나[2][3]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를 제외한 모든 실록이 다 타버린[4] 뒤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은 1592년 6월 22일 전주사고를 관리하는 오희길과 선비 안의, 손홍록이 실록을 옮겨 소실되지 않았고 내장산, 해주, 강화도 마니산을 거쳐 1597년 9월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지게 된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난 뒤 2년 뒤인 선조 33년(1600년) 8월 16일 예문관 대교[5] 권태일이 묘향산으로 가서 실록을 열람하였는데 문종실록 11권이라고 된 표지를 열어보니 9권 내용이 있었고 문종 1년(1451년) 12월 ~ 문종 2년(1452년) 1월의 기록을 확인 할 수 없게 되어 매우 안타깝다며 8월 29일 보고하였다.
○藝文館待敎權泰一書啓: "臣以香山實錄考出事, 承命下去, 本月十六日, 與記事官洪翼俊, 同議開庫, 章敬王后上徽號, 諡號及加上諡曲折査考, 已先馳啓。 且臣披閱之際, 適見文宗大王朝實錄一編。 其粧外面, 題曰第十一卷, 而觀其內, 第九卷也。 九卷則疊有之, 十一卷全無。 此必當初印出分藏之際, 籤秩錯(訒)〔認〕 而相換也。 其編內所載一二月事蹟, 則今後無從可考, 極爲痛憫。 前史闕逸, 事關非輕, 敢啓。" 傳曰: "知道。"

예문관 대교 권태일(權泰一)이 서계하기를,

"신이 묘향산(妙香山)의 《실록(實錄)》을 상고하는 일로 명을 받고 내려가서 이달 16일에 기사관(記事官) 홍익준(洪翼俊)과 함께 의논하여 사고(史庫)를 열고 장경 왕후(章敬王后)의 휘호와 시호를 올린 것과 시호를 더 올린 곡절에 대해서는 이미 고찰하여 치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이 열람하던 중에 마침 문종 대왕(文宗大王) 시대의 《실록》 한 편을 보니, 그 표지에 ‘제 11권’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그 내용은 제 9권의 내용으로서 9권은 거듭 있었으나 11권은 아예 없었습니다. 이는 필시 처음에 인쇄하여 나누어 저장할 때 권질이 잘못되어 서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 편 안에 기재된 1∼2월 사적은 앞으로 고증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전대의 역사에 빠진 일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3. 기타 [편집]

[1] 춘추관 사고, 충주 사고, 전주 사고, 성주 사고[2] 중종 33년(1538년) 11월 6일 오후 7~9시에 성주사고에 관노비 종말과 아들 말이 등이 사고 누각 천장과 지붕사이에 있는 산비둘기들을 잡으려고 그물을 가지고 불을 밝혀서 잡는데 불씨가 창틈으로 떨어져 비둘기 둥지에 옮겨붙어 불이 붙어버렸는데 하필 그때 바람이 쌔게 부는 바람에(...) 사고가 전부 타버렸다(.....) 중종실록 89권 중종 33년 11월 13일 기사(최초 보고) 중종실록 89권 중종 34년 1월 14일 기사(조사보고서)[3] 이후 춘추관 사고를 기반으로 복원하였다. 중종실록 89권 중종 33년 11월 16일 기사[4] 춘추관 사고와 충주 사고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성주사고의 경우 사고는 불타지 않았으나, 땅 속에 숨겨놓은 실록이 불태워졌다.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8일 기사[5] 사고 서적 관리직